[5월/육아] 백김치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

발행 : BLGT / Date : 2016. 6. 16. 11:11 / Category : 육아

내가 그 대통령을 미워하는 이유와 백김치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 
주절주절 자식 이야기  
Posting By 신바람

큰 아들한테는 미안한 일이 참 많다


내가 그 대통령을 미워하는 이유와
백김치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



슈퍼에 가니 배추가 좋다.
한국에서의 속 실한 배추만큼이야 하겠냐마는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해.
몇 통 사들고 와서 그냥 쑹덩 쑹덩 썰어 소금 뿌려 절여놓는다.



절여 놓은 배추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오래 전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느 날이 떠오른다.



이천... 몇 년도더라...
큰아들이 만 다섯 살 반, 작은 아들이 만 두 살 반이었을게다.
그날은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 씨께서 독일을 방문하기로 한 날.
보통 국빈은 수도인 베를린으로 모시는 것이 상례지만 그날은 이례적으로 베를린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제도시인 프랑크푸르트도 아니고 바로 우리 동네 마인츠로 오시겠다고 했다니...
바로 옆 동네 비스바덴에 있는 미군부대 공항으로 도착을 한다는데
평소 일 없이 조용하던 동네가 난리가 났다.

물론 독일 정부로서도 넘의 나라 국가원수가 자기 나라에 왔다가
큰 도시에서 돌팔매질이라도 당한다면 거~ 참 낭패기에
심사숙고한 배려의 일환이었다고 충분히 이해했는데

덕분에 갑자기 온 도시가 임시 휴일로 정해졌다.
관공서도 가게도 학교도 유치원도 휴일, 문을 닫았다.
온통 경찰들이 깔려 맨홀 뚜껑까지 열어 조사하고 난리 부르스를 쳤다.
테러 당할까 봐 무지하게 쫄았던 모양이다.


그날 원래 유치원에 가 있어야 했던 큰아들은 동생과 요것조것 놀고 있었고
나는 배추를 절여 놓고 한가하게 졸고 있었다.
.
.
.
.

얼마나 잔 걸까?.....
"엄마...어엄마..."
조심스럽게 부르는 큰아들 목소리에 깨어났다.
눈앞에 와 서 있는 큰아들의 표정은 뭔가 심히 걱정되고
이거 어쩌지... 하는 표정이 역력했기에 순간 가슴이 철렁~

"왜?" 하고 일어서는데 발 밑에 뭔가 물컹하고 찬 것이 밟혔다.
보니.... 절여진 배추 쪼가리.... 가 자고 있던 방 문에도 철퍼덕... 놀라 일어나
부엌으로 가보니.... 아. 뿔. 싸....
꽤 큰 양푼에다 썰어 절여놨던 배추가 하나도 남지 않고 어디로 갔는지...
사방으로 전부 공간이동이 되어 있었으니...


순간... 모든 것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아고~ 내 팔자야.... 늙은 나이에 애 낳느라... 그것도 넘의 나라에서 온갖 고생 다하고...
서울 사는 친구들 가서 보니 다들 김치 사 먹던데... 무슨 팔자라 꼬박꼬박 담가 먹어야 하고...
사실 그 당시에 인생에서 가끔 오는 슬럼프라는데 빠져 우울했던 때라 그날...
모든 게 설움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도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한다.
울며 불며 고래고래 어린 아들들한테 소리 지르고 텅 빈 양푼 던지고
큰아들도 맞고 작은 아들도 맞았다.
이웃이 그날 신고했다면 난 지금 폭력 전과자다...




중늙은이 얼어 죽기 딱 좋은 우울하고 으실으실한 2월 저녁에
양말과 바지까지 소금물에 다 절여진 두 아들은
부엌 사방에 흩어져 있던 절여진 배추를
고사리 손으로 다시 모았고
나는 걸레를 몇 번이나 짜대면서 사방으로 튄 소금물을 닦아내야 했는지...



상상을 해봤다.
둘이 놀다 보니 약간 심심해졌다.
뭔가 새 놀이감이 필요하다.
엄마는 자고 있고 부엌 바닥에 보니 재미있게 생긴 게 있다.
만져보고 싶다. 아~ 촉촉하고 말캉하다.
분명 장난꾸러기 작은 아들이 시작했을 것이다.
하나 집어던져본다.
아항~ 재밌다.
하나 더 하나 더 여러 개 더....
착한 큰아들은 분명 처음엔 말렸을게다.
하지만 재밌어 보이니 합세했을 터이고
하다 보니 정신없이 다 던져 버린 후
상황이 이거 아닌데...
엄마가 뭐라 실까?... 걱정이 되어
나한테 온 것이고.
그 덕에 주동자 동생보다 훨씬 더 세게 맞았고.
가엾은 늠... ㅠ.ㅠ



가슴 아픈 건
그 꼬지락한 배추 쪼가리들을 절대로 버릴 수 없었던 나는
그런 배추에 고춧가루도 아까워 대충 해서
허옇게 김치를 담갔는데 그 이후로 매운 거 못 먹는
큰아들이 백김치 팬이 된 것이다.
너무 맛있단다...
그런데 더 가슴 아픈 일은 나중에 커서 한글학교에서 시를 지었는데




제목이 백김치




.
.
.
.
.
여기에
더~ 더~ 가슴 아픈 일은
그 시로 커다란 사전을 부상으로 상까지 받아 온 것이다..





그날 그 대통령이 우리 동네로 만 오지 않았더라도
착한 큰아들이 종아리가 시퍼렇게 멍들도록 맞지 않았을 텐데...
.
.
.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다행히 기억을 못한다.
하지만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심히 가슴 아픈 날 중 한 날이다.








육아분야 5월 큐레이

 '날필'님

마치 소설을 보는 듯 백김치에 얽힌 가슴아픈 이야기가 펼쳐진다. 

엄마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들을 키우며 겪을 수 밖에 없는 에피소드와 첫째에 대한 미안함이 담긴 이야기가 대통령이 오던 바로 그날, 그 시간으로 읽는 사람을 데려간다. 이 이야기 외에도 신바람님의 주절주절 자식 이야기 게시판에는 너무나 함께 읽고 싶은 글들이 많다.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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