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 BLGT / Date : 2017. 4. 15. 13:15 / Category : 문화
책으로 만난 윤구병 선생님,
<윤구병 일기 1996>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존경하기도, 공감하기도 하는
윤구병 선생님.
2014년 가을즈음에 일하며 뵙고서
아마 당시 그 곳에서 더 버틸 이유를 찾았던것 같다.
그곳에서 일한 게 잘한거라 생각한
몇 안되는 이유였다.
(개인적으로 신화 실제로 본거랑 기쁨이 맞먹었다)
그만큼 선생님이 좋았고
선생님이 추구하시는 삶이 좋았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선생님도 날 좋아해주셨다.
그 후 마기련에 있으면서
몸담은 분야에 교집합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
당시 연락드렸을 땐 선생님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는 소식만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마기련, 사업단에 있으면서
업무와 지역과 마을, 공동체를 연결지어
변산공동체로 출장갈 궁리를 종종 했다.
그런 궁리도 하고 힘들다해도 나름 살만했나보다.
억지로라도 몰두할 무언가가 있었으니.
그런 몇 년 전 기억을 되살려준
서점에서의 만남.
반가움 이상의 감정이었다.
실제 윤구병선생님의 필체인가보다.
1996년에 쓰신.
"같이 산다는 게 뭔지 알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니, 실제로도 이 말을 들은듯.
같이 산다는 게 뭔지 알아? 이게 고슴도치 같은 거야. 어디서 고슴도치 한 마리가 불쑥 들어와서 이미 살고 있는 다른 고슴도치와 만나 서로 껴안는 시늉을 하는거야. 껴안으면 어떻게 될까? 서로 찌르게 돼. 상처가 나고 피가 나지. 얼마나 아프겠어? 서로 껴안으면서 살자 하는 꿈을 꾸고 여기 들어왔는데, 도시에서 적응 못한 사람이 시골에서는 적응할까? 못해.
그럼 어쩌지? 서로 마음을 내면 될까? 그것도 잘 안 돼. 결국 자연이 하는 거야. 자연이 보듬어 안아주는 거지. 사람이 자연하고는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없으니까. 자연이 치료를 해주는 거야. 여기서 살다 보면 어른이고 아이고 할 거 없이 다들 활기 차. 얼굴도 밝아져. 자연이 가진 치유 능력이야.
이곳 사람들, 마음이 넉넉하고 친절해. 스스로에게 일깨움이 일어나서가 아니야. 다 자연한테서 배운 거야. 씨앗 하나 뿌리면...
같이 산다는걸 '고슴도치 같은 것'이라 표현하셨다.
아마도 내가 그렇게 괴로워 차라리 외롭고 싶었던 이유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같이 산 것은 아니지만 단 한 순간도, 행복한 감사한 순간 조차도, 괴로움을 동반했으니.
그럼에도 더욱 괴롭게도 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에서 손꼽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니.
요즘 세상에서 추구하는 편하고 깔끔한 그런 행복과는 참 멀구나 느낀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생활을 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생님은 결국엔 자연이 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나도 동의한다.
자연이라고 불리우는 그것들이 하는 일이던, 그 자연을 만든 이가 하시는 일이던, 분명 내가 뭘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사는 동안 아마도 나는, 그거 하나 배웠다.
겨울의 일기로 시작하는 윤구병 선생님의 이 책은
미처 마지막장을 넘기기도 전에 나를 변산으로 향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가도 선생님은 변산에 계실까.
건강은 괜찮으실까.
사실 조금 두렵다.
그래도,
아직 다 읽지 못한 선생님의 일기는
그곳에서 다시 펼치기로 하자.
모든 생명이 깨어나는 봄이니까,
바삐 움직이고 있을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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