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박물관에는 수많은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저 멀리 한국 촌놈이 유럽 예술의 도시 파리에 와서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만큼은 한 번 보고 싶어 달려 왔답니다.
1) 루브르 박물관 역사
잠시 루브르박물관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면,
루브르 박물관(Le musee du Louvre)은 프랑스 국립박물관으로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루브르 궁전은 12세기 후반 필립2세의 명으로 착공되었는데
그 당시는 궁이라기 보다는 요새이었다고 합니다.
1672년 루이14세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거주를 옮기면서 루브르는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쓰도록 했습니다.
1692년 루브르 건물에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서고, 그 후 100년동안
루브르에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 7월 14일~1794년 7월 27일) 당시 국민회의는
루브르가 박물관으로서 국가의 걸작을 전시해야 한다고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박물관으로서의 루브르는 1793년 8월10일, 537점의 회화를 전시하면서
첫 문을 열었는데 전시된 작품 대부분이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징발된 수집품들이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시기에 소장품의 규모가 크게 늘었고 이름도 '뮈제 나폴레옹'으로 바뀌었습니다.
제2제국시절(나폴레옹3세 통치기간) 중에는 20,000점의 수집품이 들어왔고,
그 이후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면서 2008년 기준으로 8개의 전시관에 나뉘어 있다고 합니다.
이집트 고대유물관, 근동 유물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로마 유물관, 이슬람 미술관,
조각 전시관, 장식품 전시관, 회화관, 판화와 소묘관 등이 있습니다.
전 세계 유물은 죄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 수집되었는 것 같습니다.
갈설하고서리 현재의 루브르박물관에는 회화소장품으로 약 6,000점 이상 소장하고 있습니다.
라파엘이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이탈리아 거장들로부터 작품을 들여왔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프랑수아1세때 그의 궁정으로 데려오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1986년에 오르세미술관이 개장되자 루브르의 소장품을
1848년 혁명이전과 이후의 작품으로 나누어,
혁명 이후의 작품들은 새로운 미술관인 '오르세미술관'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2) 루브르 피라미드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짧은 시간에 모든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정된 시간내에 미술작품 위주로 돌아보았습니다.
먼저 루브르박물관 주위 분위기부터 살펴보고 들어가 볼께요.
루브르박물관을 들어서면 중앙에 전면 유리로 만든 피라미드가 놓여져 있습니다.
밖에서 안으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루브르 피라미드는 1980년대 미술관 시설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ㄷ' 모양의 루브르 궁전 중앙정원을 파내어 그 안에
커다란 휴게실과 여러 시설을 위한 공간을 만들면서 미술관의 부속 건물들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도록
설계하였고 중앙은 유리 피라미드로 만들어 지하공간 안으로 빛이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중국계 미국인 I.M. 페이에 의해 설계되었는데 그 당시 충격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훌륭한 이집트 유물이 소장되어 있어서 피라미드 조형물은
의미있는 형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유리 피라미드 입구에서 지하 시설 전경>
3) 전시관 티켓 구매와 잠시 카페에서 숨고르기
들어가면 안내데스크에서 한글판 가이드 하나 들고 살펴보아요..
하도 정신이 없어서,,, 점심도 해결 못하였기 때문에,
숨 좀 고를려고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했습니다.
커피맛은 좋았던 것 같네요..^^
이제는 전시관 들어가기 위해서는 티켓을 구입해야 합니다.
무조건 15유로 입니다.
아~ 오후 4시 넘어서 박물관에 들어왔기 때문에,
전시 관람은 겨우 1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괜찮겠냐고 친절히 안내해 주더군요.
왜냐하면 그 날은 수요일이라 저녁 6시에 폐관한다고 하였습니다.
내일은 저녁 9:30분까지 open하니 내일 목요일에 다시 오는게 어떠냐고 하였어요.
그러나 일정상 할 수 없이 1시간내에 가능한한 많은 것으로 보기로 하고,
그냥 15유로를 투자하기로 했답니다..
이제부터는 유명한 회화 예술작품 몇 점을 소개하는 것으로 해 볼려고 합니다.
거기서 볼 때는 미흡하게 나마 봤던 것을
돌아와 이렇게 정리하면서 저도 공부해 볼겸 여기에 올려봅니다.
4)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찾아서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루브르박물관에 올 가치가 있다고 할 정도로,
저는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모나리자가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하게 되었어요.
그 유명한 모나리자는 '드농 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최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림이라 그런지 곳곳에 모나리자 이정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
그것 덕분에 저도 쉽게 찾아 갈 수 있었어요.
모나리자의 "모나(Mona)"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어 경칭이고,
"리자(Lisa)"는 초상화의 모델이 된 여인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하여 '리자 여사'라는 뜻이 되겠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02년에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미완성작으로 남겨둔지 4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모델이 누군지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조르지오 바사리(1511~1574)에 의하면
이 그림의 모델은 1479년 피렌체에서 평민 가정에서 태어나 16세에
상인인 프란체스코 디 B.D. 지오콘도와 결혼한 '리사 마리아 게라르디니이라'
라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른 의견으로는 다빈치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켜 그린 것이라는 것도 있고,
레오나르도의 어머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쨋건 그 모델이 누구건 간에 이렇게 훌륭한 예술작품을
우리는 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현실이지요...^^
진짜 눈썹이 없더군요.ㅎㅎ
눈썹이 없는 이유에 대하도 의견이 분분한데요.
눈썹을 뽑는 것이 그 당시 미의 기준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고요.
모나리자 작품에 눈썹이 없는 이유는 그려넣지 않은 미완성작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누구는 청소 중에 눈썹 주위가 지워졌다는 주장도 있고 등등.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가까이 가기도 어렵지만
모나리자는 특별히 유리막으로 보호를 해 놓고 있었습니다.
도난방지를 위해서도 그렇고 가까이 가서도 만져볼 수 없도록 해 놓았네요.
동영상으로 한 번 분위기를 볼까요?
<모나리자 주위 분위기>
5) 파올로 칼리아리(별명 베로네제)의 '가나의 혼인잔치' - 1563년
회화 크기가 상당하였는데, 666x990 cm 라고 합니다.
모나리자의 반대편에 큰 벽면에 전부를 차지할 만큼 큰 그림이었습니다.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 중에 가장 크다고 합니다.
정 중앙에는 예수님이 있고,,,
바로 옆에는 이미 아들의 운명을 아는 것처럼
슬픈얼굴의 성모 마리아가 앉아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작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베로네제인데,
배경은 화가가 살았던 베네치아입니다.
그림의 색상이나 분위기 등 모든 것이 그 당시 베네치아의 배경으로
그려졌다고 하네요.
우측 하단에는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인
물항아리에서 포도주가 만들어진 것을 노랑색 시종이 따르고 있는 모습이 있고요.
예수 머리 위쪽으로는 뒤에 하인들이 양고기를 자르는데 그것은 구세주의
희생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32명의 인물들을 등장시켰는데 각각 나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넣었다고 합니다.
그림의 첫 열에서, 즉 맨앞에 음악가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루브르의 학예사들은 가장 밝은 옷을 입은 바이올린 연주자가 바로 베로네제 자신이고,
그 앞에 어두운 얼굴의 첼리스트가 그의 라이벌
티치아노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의 지식을 빌리자면 베네치아의 3대 천재화가인 베로네제, 티치아노, 틴토렌토가 있었는데
가장 유명했던 티치아노는 모든 경쟁자들의 공공의 적이었다고 하니
베로네제가 그렇게 그려넣었던 것 같습니다.
[참조 : 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6) 안토니오 캄피(Antonio Campi)의 '예수의 수난의 신비' - (1524년경~1587년경)
프랑스어로 "Les Mysteres de la Passion du Christ"로 예수의 수난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캄피의 '예수의 수난의 신비'>
잘은 모르겠으나 예수의 잡히시던 때부터 부활 40일 후 승천하시는 모습까지
그려 놓은 것 같습니다.
중앙 아래에는 채찍같은 것으로 고초를 당하시고 비난 받는 장면 같고,
오른쪽에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이 나오고,
위쪽 정 중앙에는 골고다 언덕에서 끝내 영혼이 떠나는 장면으로 인하여
하늘이 어두워지는 장면을 표시하였는데,
밑에 있는 마리아와 뭇 여인들이 슬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우측 백마를 탄 관리가 손가락질 하는 모습은
혹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는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왼쪽편으로는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지내는 모습과
3일째되는 날 부활하셔서 천사가 나타나 텅빈 무덤을 보여주는 것 같고,
오른쪽 상단에는 그 후 부활 40일 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천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도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나름 묘사해 봅니다.
<드농관 내부에서 루브르박물관 정원을 내려다 본 모습>
7) 주세페(Giuseppe Arcimboldo)의 '사계' - 1573년
박물관을 배회하다가 특이한 그림을 발견하고는
이 그림들이 그 유명한 주세페(1527년~1593년)의 '사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실린 것 같은 그림인데요.
거기서는 자세히 조사를 못하다가, 이렇게 블로그에 올리면서
좀 찾아보니, 나름 이유가 있었네요...^^
이 사계 그림들은 신성로마제국시절 황제 막시밀리안 2세를 만족시켰다는 초상화입니다.
1566년 막시밀리안 2세는 오스만제국이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인
헝가리를 점령했다는 소식에 불안해 했고, 이후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됩니다.
1568년 오스만제국과 굴욕적인 제약을 맺게되면서 조공을 바치게 되어
막시밀리안은 무능력한 황제라고 비난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황제는 뜻밖의 묘안을 떠올렸는데, 자신의 권위를 세워줄 그림이 필요하다며
초상화를 요구하게 되었고, 명령을 받은 주세페는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주세페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작품을 떠올리며 사람,동물,식물을 뒤섞여 마치 괴물처럼
그린 그의 그림에 영감을 받아 초상화 4점을 황제에게 바치게 됩니다.
신하들이 초상화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고 엄벌에 처해야된다고 주장하였으나,
막시밀리안 2세 황제는 오히려 박수를 보내었다고 합니다.
이는 각각 봄,여름,가을,겨울을 의미하는
'사계'로 황제의 전지전능함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었습니다.
'봄'은 다양한 꽃들과 신록의 잎으로 장식되어 있고,
'여름'은 복숭아, 옥수수,버찌 등 제철과일로 표현되 있었으며,
'가을'은 포도와 호박,밤송이 등으로, 몸에는 포도주통을 입혔습니다.
'겨울'은 잎사귀가 떨어진 고목으로 표현해 놓앗습니다.
특히 목에는 새롭게 자라난 가지에는 오렌지와 레몬이 달려 있었는데,
이는 희망을 상징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기막힌 초상화 덕분에 막시밀리안 황제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고,
무능한 황제에서 초상화덕분에 태평성대를 이룬 황제로 이미지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내용 출처: MBC 서프라이즈, 2015.7.5.방영]
8)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 '나폴레옹 대관식' - 1748~1825년
다비드의 화가로서의 천재성을 나타낸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화입니다.
옛날 중세시대의 예술그림은 사실화가 많은데요.
그림 크기는 가로가 약 10m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전체 사진을 한 장면에 넣어서 찍어보려고 애썼으나
앞에 어느 동양인 부부(?)가 알짱거려 비켜서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찍었는데, 오히려 사진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어서 좋으네요...ㅎㅎ
전문가의 힘을 빌리자면, 그 당시 이렇게 큰 그림을 사실처럼 세밀하게
구도와 구성으로 그려내었다는 것은 다비드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요.
그저 작게 그려서 확대하는 요즘 기술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아주 큰 캔버스에 세밀하게 명암으로 기가막히게 그려내었다는 것은
정말 감탄할 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제목은 [나폴레옹의 대관식]인데 그림 내용에는 실제는
나폴레옹이 황후 죠세핀에게 대관식을 하는 그림입니다.
그렌데 왜 제목이 '나폴레옹 대관식'일까요?
원래는 나폴레옹 대관식에 교황을 초빙할 때,
오셔서 권위를 보여주시고 왕관을 씌워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황이 그 대관식에 참여했는데(황금빛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
교황이 나폴레옹에게 왕관(월계관)을 씌울려고
무릎꿇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폴레옹이 재빠르게 교황에게 다가가서
그 월계관을 낚아채어 스스로 머리에 썼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황후 죠세핀에게는 무릎꿇게 하여 왕비에게도
관을 씌우는 의식을 교황 앞에서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폴레옹 황제가 교황에 못지 않게 권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림에는 나폴레옹 대신 황후 죠세핀이 대관식을 치르는 것을 그림이지만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라 함으로써,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황제로써의
나폴레옹의 왕권도 높이는 훌륭한 예술작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내용 설명 출처 : 이주헌의 미술기행]
그러고 보면 그럴 듯 한 것 같습니다.
정말 그림이 크고 사진 찍을 때는 죄다 팻말에 프랑스어라서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뒤늦게 공부하면서 보니 정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실제 이 대관식은 1804년 12월2일 '노트르담 성당'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제가 '노트르담 성당(사워)' 모습을 담아 왔으니 그때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대관식은 굉장한 선전 효과를 거두었는데, 나폴레옹은
다비드에게 대관식을 미화하여 그려달라고 주문했다는 군요.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실제보다 더 커보이도록 했고,
죠세핀의 머리에 나폴레옹이 직접 왕관을 씌워주는 모습이지만 실제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10년 후 나폴레옹이 몰락함으로써 오만에는 파멸이 따른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9)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의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 - 1757~1822
이제 마지막 예술작품으로 조각품 하나 소개하고 이만 루브르의 예술여행은 마칠까 합니다.
수없이 많은 조각 예술품들이 많아서 짧은 시간안에 다 볼 수가 없었고,,,
폐관 시간이 쫓기어 밖으로 나가면서 조각품을 보았기 때문에
좀 부족하게 관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독 한 작품에 많은 분들이 사진 셧터를 연신 누르는 것이 있었는데,
이 작품입니다.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카노바(1757~1822년)는 장 드 라퐁텐이 아풀레이우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1669년에 쓴 희곡 <<프시케와 에로스의 사랑 이야기>>에 나오는
한 장면을 주제로 만든 예술작품입니다.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
그 희극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인용하자면,
언니들의 꾀임에 넘어가 약속을 어기고 '에로스'의 얼굴을 보고야 만 '프시케'는
결국 에로스와 이별하게 되는데,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비너스에게
찾아가 갖은 학대를 견디며 '에로스'를 기다리게 됩니다.
잘 견디는 프시케를 보고 질투를 느낀 비너스가 어느 날 지하세계에 가서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움을 한 상자 얻어 오라는 심부름을 보냅니다.
프시케는 선물 한 상자를 얻어 돌아오는 중에 그 상자를 절대 열지 말라는 신신 당부에도 불구하고
호기심과 아름다워지고 싶은 유혹에 그만 뚜껑을 열고 맙니다.
그러나 그 상자 안에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지하세계의 잠'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곧 프시케의 죽음과 같은 잠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었죠.
사랑하는 그녀를 찾아 나선 에로스는 입맞춤으로 프시케는 잠에서 깨어나고
프시케는 에로스와 함께 신들의 세계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그런 스토리라고 합니다...^^
안토니오 카노바는 이 중 에로스의 입맞춤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프시케의 모습을 다루었습니다.
육감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투명한 우아함을 발하고 있는 이 걸작품은
시적인 색조와 신화 속의 형이상학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순수함과 윤곽의 얽힘, 공간 내에서 형태들의 성숙함 등이
마치 한 송이 꽃의 개화를 연상하게 하며 이 모두는
사랑이 신성한 황홀감과 만나는 마술 같은 순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Psyche ranimee par le baiser de l'Amour]
- 안토니오 카노바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예술작품들을 보았으나 제대로 읽을수가 없어서,
그리고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도 없는 관계로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쉬운 점이 있네요...
그러나 이렇게 찍어왔던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하나 하나 공부해 가면서 정리해 나가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예술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고,
뭔가 예술의 식견이 한층 높아져 가는 것 같아서 기분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